
推荐于201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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楼上就别装好人了..明明是一片报道 오마이뉴스 还说是自己写的..
这是韩国学生写的作文-印象深刻的事情
作文内容写了两件事给她的印象.翻译对应.
我觉得你不应该把别人的复制过去,而是参考这些写自己的生活.
===========================================================
나는 2년간의 학교생활중 인상깊은일이 두가지 있습니다.
在我2年的学生生活当中,印象最深的有两件事情。
하나는 1학년 학교축제때 중국음식을 만들어 팔았던것입니다.
一个是,一年级学校文化节的时候,做中餐卖的事情。
직접음식을 만들어야했기때문에 반대하는사람도 있었습니다.
因为是得做菜,有些人表示反对。
그러나 결국 내가 주방장이되어 중국음식점을 열었습니다.
可是,我做了主厨师,开了中国饮食店。
처음에는 모든것이 순조로울줄 알았는데 자세한 계획없이 일을 하다보니 동학들 사이에
의견충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一开始以为一切会顺利,不过因为没有定好详细的计划,同学之间开始产生了意见不和。
결국 고생은 많이 했지만 즐겁지 않은 축제가 되어버렸습니다.
虽然做了很多努力,不过,最终,文化节办得很不愉快。
이일을 통해 저는 어떠한일을 하기전에 철저한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通过这件事情,我认识到,不管做什么事情,一定要定好彻底的计划。
두번째는 얼마전 북경으로 졸업여행을 다녀온것입니다.
第二件事情呢,是不久前,我去北京毕业旅游。
북경에는 고궁,이화원,천단공원등 많은 명승고적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곳은 만리장성이었습니다.
北京有很多名胜古迹,像故宫,颐和园,天坛公园等。其中印象最深的是万里长城。
시간이 부족해서 만리장성 끝까지 오르지 못했지만 만리장성을 보며 느낀점이 있습니다.
因为时间不过,没有爬到万里长城的顶头,不过,眺望万里长城,想了一些事情。
하나는 장성처럼 웅장한 꿈을 품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一个是,想长城一样,有着雄伟的梦想。
둘쨰는 장성을 내려올때 지친아이를 안은채 내려가던 아이아버지를 보고 부모의 사랑에 감동받았습니다.
另外呢,从长城下来的时候,看到一位父亲背着疲倦的孩子下去,当时,我被天下父母心感动。
그때 한국에 돌아가서 부모님께 효도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当时就想,回韩国,孝敬父母。
가끔 북경이 그리워집니다.
有时候,很想念北京。
많은일이 있었던 2년간의 학교생활, 잊지 못할겁니다.
有过很多事情的那两年的学生生活,不能忘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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这是韩国学生写的作文-印象深刻的事情
作文内容写了两件事给她的印象.翻译对应.
我觉得你不应该把别人的复制过去,而是参考这些写自己的生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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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년간의 학교생활중 인상깊은일이 두가지 있습니다.
在我2年的学生生活当中,印象最深的有两件事情。
하나는 1학년 학교축제때 중국음식을 만들어 팔았던것입니다.
一个是,一年级学校文化节的时候,做中餐卖的事情。
직접음식을 만들어야했기때문에 반대하는사람도 있었습니다.
因为是得做菜,有些人表示反对。
그러나 결국 내가 주방장이되어 중국음식점을 열었습니다.
可是,我做了主厨师,开了中国饮食店。
처음에는 모든것이 순조로울줄 알았는데 자세한 계획없이 일을 하다보니 동학들 사이에
의견충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一开始以为一切会顺利,不过因为没有定好详细的计划,同学之间开始产生了意见不和。
결국 고생은 많이 했지만 즐겁지 않은 축제가 되어버렸습니다.
虽然做了很多努力,不过,最终,文化节办得很不愉快。
이일을 통해 저는 어떠한일을 하기전에 철저한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通过这件事情,我认识到,不管做什么事情,一定要定好彻底的计划。
두번째는 얼마전 북경으로 졸업여행을 다녀온것입니다.
第二件事情呢,是不久前,我去北京毕业旅游。
북경에는 고궁,이화원,천단공원등 많은 명승고적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곳은 만리장성이었습니다.
北京有很多名胜古迹,像故宫,颐和园,天坛公园等。其中印象最深的是万里长城。
시간이 부족해서 만리장성 끝까지 오르지 못했지만 만리장성을 보며 느낀점이 있습니다.
因为时间不过,没有爬到万里长城的顶头,不过,眺望万里长城,想了一些事情。
하나는 장성처럼 웅장한 꿈을 품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一个是,想长城一样,有着雄伟的梦想。
둘쨰는 장성을 내려올때 지친아이를 안은채 내려가던 아이아버지를 보고 부모의 사랑에 감동받았습니다.
另外呢,从长城下来的时候,看到一位父亲背着疲倦的孩子下去,当时,我被天下父母心感动。
그때 한국에 돌아가서 부모님께 효도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当时就想,回韩国,孝敬父母。
가끔 북경이 그리워집니다.
有时候,很想念北京。
많은일이 있었던 2년간의 학교생활, 잊지 못할겁니다.
有过很多事情的那两年的学生生活,不能忘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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你连大概的提纲都没有给~~~怎么写呢???
你的意思是什么都行是吗?????
那我写了,别写完了说,这个不符合我....
백일장에 참가한 날
지난 7월 21일 토요일은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주최한 백일장 대회에 참가한 뜻깊은 날이었다. 대회의 규모는 매우 커서 처음에 모인 숫자만 1800여명이었고, 실제로 작품을 제출한 사람이 1200여명이었다고 한다. 비가 왔기 때문에 대회는 명동에 있는 숭의여자대학교의 음악당에서 진행되었다.
사실, 나는 이번 대회가 인지도가 높은 단체에서 주최하는 큰 대회이기 때문에 입상하게 되면 대입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혹해서 이 대회에 참가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입상 여부에 상관없이 대회에 임했다.
시제는 지난 6월 23일에 열렸던 전남대학교 고등학생 경시대회의 '운동화'에 비하면 흔한 것이었다. '마음'과 '비'.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서 쓰는 것이었는데 나는 '마음'을 선택해서 '그의 평화를 위하여'라는 산문시를 썼다.
역시 운문 한 작품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산문의 그것에 비하여 매우 짧았다. 작품을 짓는 데 주어진 시간은 3시간이었다. 2시간이나 남아서 점심을 먹고도 한참 시간을 때웠다.
덥고 축축한 강당 내에서의 일정이 끝나갈 무렵, 입상자 발표(이번 대회의 일정에는 입상자 발표와 시상식까지 포함되어 있었다)에 앞서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의 문인, 현기영 선생님과 신경림 선생님께서 문학에 대해서 간단한 강의를 하셨는데, 그것이 매우 간단명료하면서도 훌륭한 교훈을 담고 있었다.
먼저 강의를 하신 신경림 선생님의 학창 시절의 경험담을 들려주시며, 문학을 하는 데 있어서 입상 경력 같은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셨다. 특히 나는 신경림 선생님 같은 분도 백일장에서 단 한번도 입상해본 일이 없다는 것에 일종의 동지 의식 같은 것까지 느꼈다.
현기영 선생님은 학력 평가의 맹점, 고등의 사고 능력인 응용력과 창의력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절대로 학력 평가가 한 인간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점수에 너무 집착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두 분의 강의가 끝나자 입상자 발표가 있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나의 이름은 없었다. 나는 내 작품에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갖고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내 이름이 불려지지 않으니 심하게 섭섭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입선자를 부를 때부터 시작해 장원의 이름 석자가 들릴 때까지 가슴이 두근두근하더니 내 이름이 없는 것을 알고는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찜통 더위(특히, 숭의여대 음악당에서 내가 본 냉방장치라고는 선풍기 3대뿐이었다) 속에서 무려 8시간을 서성였는데 아무런 포상도 없다는 것이 매우 섭섭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눈두덩 근처까지 솟아오른 눈물을 꾹 삼키고 힘없이 강당을 나오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일단 위대한 작가가 반드시 이런 대회의 입상 경험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그리고 상을 노리고 작품을 쓰겠다고 덤볐으니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겠냐 하며 나 자신을 다그쳤다.
또 한 가지, 포상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것은 이 대회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포상이 없기는 왜 없는가. 평생 몇 번 만나보기도 힘든 훌륭한 작가분들을 뵙고, 말씀을 들었고 그들에게 내 작품을 평가받을 기회까지 있었다.
또한 집에 있었다면 빈둥거리며 보냈을 오늘 같은 날, 비록 덥고 힘겨웠지만 같은 취미(혹은 특기)를 갖고 있는 많은 친구들을 만나 함께 제 역량을 발휘해보았다는 것. 이보다 더 훌륭한 포상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니 장원이 받은 여러 권의 장서들과 몇십 만원짜리 문화상품권도 부럽지 않았다.
출처 : 내게는 가장 인상깊은 백일장이었다 - 오마이뉴스
你的意思是什么都行是吗?????
那我写了,别写完了说,这个不符合我....
백일장에 참가한 날
지난 7월 21일 토요일은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주최한 백일장 대회에 참가한 뜻깊은 날이었다. 대회의 규모는 매우 커서 처음에 모인 숫자만 1800여명이었고, 실제로 작품을 제출한 사람이 1200여명이었다고 한다. 비가 왔기 때문에 대회는 명동에 있는 숭의여자대학교의 음악당에서 진행되었다.
사실, 나는 이번 대회가 인지도가 높은 단체에서 주최하는 큰 대회이기 때문에 입상하게 되면 대입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혹해서 이 대회에 참가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입상 여부에 상관없이 대회에 임했다.
시제는 지난 6월 23일에 열렸던 전남대학교 고등학생 경시대회의 '운동화'에 비하면 흔한 것이었다. '마음'과 '비'.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서 쓰는 것이었는데 나는 '마음'을 선택해서 '그의 평화를 위하여'라는 산문시를 썼다.
역시 운문 한 작품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산문의 그것에 비하여 매우 짧았다. 작품을 짓는 데 주어진 시간은 3시간이었다. 2시간이나 남아서 점심을 먹고도 한참 시간을 때웠다.
덥고 축축한 강당 내에서의 일정이 끝나갈 무렵, 입상자 발표(이번 대회의 일정에는 입상자 발표와 시상식까지 포함되어 있었다)에 앞서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의 문인, 현기영 선생님과 신경림 선생님께서 문학에 대해서 간단한 강의를 하셨는데, 그것이 매우 간단명료하면서도 훌륭한 교훈을 담고 있었다.
먼저 강의를 하신 신경림 선생님의 학창 시절의 경험담을 들려주시며, 문학을 하는 데 있어서 입상 경력 같은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셨다. 특히 나는 신경림 선생님 같은 분도 백일장에서 단 한번도 입상해본 일이 없다는 것에 일종의 동지 의식 같은 것까지 느꼈다.
현기영 선생님은 학력 평가의 맹점, 고등의 사고 능력인 응용력과 창의력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절대로 학력 평가가 한 인간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점수에 너무 집착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두 분의 강의가 끝나자 입상자 발표가 있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나의 이름은 없었다. 나는 내 작품에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갖고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내 이름이 불려지지 않으니 심하게 섭섭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입선자를 부를 때부터 시작해 장원의 이름 석자가 들릴 때까지 가슴이 두근두근하더니 내 이름이 없는 것을 알고는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찜통 더위(특히, 숭의여대 음악당에서 내가 본 냉방장치라고는 선풍기 3대뿐이었다) 속에서 무려 8시간을 서성였는데 아무런 포상도 없다는 것이 매우 섭섭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눈두덩 근처까지 솟아오른 눈물을 꾹 삼키고 힘없이 강당을 나오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일단 위대한 작가가 반드시 이런 대회의 입상 경험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그리고 상을 노리고 작품을 쓰겠다고 덤볐으니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겠냐 하며 나 자신을 다그쳤다.
또 한 가지, 포상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것은 이 대회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포상이 없기는 왜 없는가. 평생 몇 번 만나보기도 힘든 훌륭한 작가분들을 뵙고, 말씀을 들었고 그들에게 내 작품을 평가받을 기회까지 있었다.
또한 집에 있었다면 빈둥거리며 보냈을 오늘 같은 날, 비록 덥고 힘겨웠지만 같은 취미(혹은 특기)를 갖고 있는 많은 친구들을 만나 함께 제 역량을 발휘해보았다는 것. 이보다 더 훌륭한 포상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니 장원이 받은 여러 권의 장서들과 몇십 만원짜리 문화상품권도 부럽지 않았다.
출처 : 내게는 가장 인상깊은 백일장이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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